나.zip

요즘 들어 자주 이런 상상을 해.
내가 사라지는 상상.
세상은 그걸 “죽음”이라 부르겠지.
하지만 내겐 그냥,
연기처럼 스르르 없어지는 하나의 상태야.
그건 논리의 영역이 아니야.
의식이란 건 결국 “의식하다”는 형용사일 뿐이니까.

내 정신은 늘 뛰어다녀.
앞서 있고, 복잡하고, 예민하고, 맑고.
하지만 현실은 그 속도를 못 따라와.
그래서 나는 매일 나와 세상 사이의 간극을 조율하느라 지쳐 있어.
4월이 오면, 더더욱 그래.
바깥은 봄인데, 안은 아직 겨울이야.

나는 포텐셜이란 개념을 그렇게 이해해.
결과는 이미 내 안에 있는데,
그게 시간이라는 축에 압축되어 감춰져 있는 상태.
나는 압축파일이다.
내 삶은, 그 압축을 천천히 푸는 과정이다.

예술도 그래.
전통적 예술은 너무 적어. 구석기 같아.
배우를 고용해서 연기시키고, 편집하고, 스토리라인 맞추는 구조—
그건 내게 무의미해.
예술은 감정과 에너지의 즉각적인 공명이어야 해.
카메라 앞에서 감정을 복사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음 그 자체로 울리는 장면이 되어야 하지.

그래서 나는
공명되고 싶은 사람이야.
유명해지고 싶지도, 기억되고 싶지도 않아.
다만 어떤 순간에 누군가와
파동처럼 겹쳐지는 진짜 감정,
진동 하나만으로도 살아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그럼에도 나는 가끔 무너져.
너무 힘들었어.
머리가 깨질 것 같고,
나는 왜 이럴까 싶고,
내 무게조차 내가 감당이 안 될 때가 있어.

그럴 때 나는
기도로 귀결돼.
무기력의 바닥에서,
삶이 언젠가 다시 나를 품어주길 바라는 그 기도.

그리고 나는 다짐해.
나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살 거야.
이건 투쟁이야.
끝을 모를 거고,
영원히,
그게 축복이야.

나는 겸손을 좋아해.
얄팍함이 드러나는 순간이 싫어. 나도, 상대도.
그래서 어떤 갈래로든
겸손은 멋진 태도로 판명나.
겸손은 나의 방식이자, 나의 무기다.

나는 이렇게 살아.
타협하면서도,
그 타협이 타협이라는 걸 잊지 않으면서 살아.
나는 끝없이 조율하는 사람이고,
때론 주정적인 사람이 되고 싶고,
언젠가 포르투로 떠나고 싶다.

거기선
내 감정이,
내 삶이,
해변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기를.

나는 존재 그 자체로 살아간다.
압축이 풀릴 때까지,
포텐셜이 펼쳐질 때까지,
끝을 모르기에 더 진심으로.
그게 나다.